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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추성훈, 태극기와 일장기 사이에서의 스포츠 민족주의


추성훈, 일본이름 요시히로 아키야마 (Yoshihiro Akiyama, 秋山成勳)

제일동포 4세, 비운의 격투가

스포츠 민족주의의 희생자.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노래를 시킬때 그는 일본 국민 가수라는 비즈나 Mr. Children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 이었다.



지금에서야 문지애 아나운서가 인터뷰 해가는 형식으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제작되고 있다.

그가 한국 국적이었을 당시 한국에게 일본인이었던 그는, (많은 텃세를 받았고 "(국적을) 바꿔야지. 말을 해도 안 됩니다, 여기는. 귀화한 다음에 일본에서 유도해야죠." 격양된 표정의 그의 인터뷰가 잊혀지지 않는다.)



100년을 지켜온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인이 되어 일장기를 가슴에 품고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정정당당히 승부해서 태극기를 이겼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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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그는 한국인이 되어 한국인에게 욕을 먹었다.

잘못은 텃세와 파벌이 가득한 스포츠계가 하고 욕은
추성훈 혹은 요시히로 아키야마가 받았다.

이게 뭐? 스포츠 민족주의 -_-

최근 북한과의 경기에서 정대세가  많이 주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또한 우리 나라가 가지고 있는, 정확히 개한민국의 가지고 있는 스포츠 민족주의의 희생자이기 때문에. (그는 다른 국기를 가슴에 매고 대한민국의 골대에 골을 넣었을 때, 그제서야 축구계가 버린 또 하나의 인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는 캐나다에서 생활을 했었다. 대한민국을 One culture 국가라고 한다  캐나다는 Multi culture 국가라고 한다.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이룩된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National Holiday (국경일)인 크리스마스 때 캐롤송이 길거리에서 많이 울리지 않는다. 또한 가게 종업원들도 Merry Christmas라 하지 않고 Happy Holiday라고 한다.

왜냐 -> 다른 문화 (비 가톨릭 국가문화권)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예수의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멀티 컬쳐 국가에서 나온 다른 문화권에 대한 존경은 그 사람이 캐나다인이면 그 사람의 성장배경에 상관없이 그 사람을 캐나다로 대표하는 힘을 실어주었다.

다른 예 Another Example

프랑스.. 축가 국가대표 선수중 순혈(?)의 프랑스인은 얼마되지 않는다. 많은 선수들이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이민 2세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단의 경우도 알제리에서 이민 온 2세이다.

그는 프랑스 국기를 달고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고,

프랑스를  축구에 있어서 세계 최강 국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프랑스인들은 그를 프랑스인르서 존경할 뿐이지, 아무도 알제리에서 온 가난한 이민자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이민 2세, 특히 제일동포를 외면했다.

미국국적의 사라장은 (장영주) 그렇게 환대를 했으면서, 유독 일본에서 성장한 선수들에게는 텃세를 보였다.

아이러니하다.

유도는 원래 일본 운동아닌가?

일본 운동인 유도를, 일본에서 태어난 제일동포 4세 가 한국에 와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
(세밀한 연관관계는 읽는 사람의 판단에 맏긴다.)

얼마전 신해철의 발언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

그는 틀렸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 있는 지도.. -_-

미국 국적의 세계적인 사람은 한국인의 피, 한국 국적을 강조할지라도

일본 국적은 배척한다.

스포츠 민족주의 이제는 좀 없어졌으면 한다.

특히 일본에 대한 감정도,

아직까지 그들이 망언을 일삼고, 과거의 그들이 저지른 행각에 대해서도 몰지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일부다.

나의 일본친구들의 대부분은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과거의 행동에 대해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영화 '한반도'에서의 차인표의 대사

'일본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손잡아야 할 스폰서 입니다.'

무슨 연관관계가 있을까? 계속 일부가 헛 소리한다고 전체를 미친 족속으로 몰지 말고 친구가 되자.

논지가 잠시 빗나갔다.

스포츠계가 인재 등용의 눈을 좀  더 넓혔으면 한다.

다음은 추성훈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퍼왔다.

네이버 블로그 Everyday.. 님의 블로그

추성훈 ( 1975년 7월 29일 ~)은 한국계 일본인 유도가이자 K-1 히어로즈에서 활약하는 종합격투가이다. 일본 오사카 이쿠노쿠 코리아타운에서 태어난 재일 동포 4세로, 후에 일본귀화를 하였으며, 일본 이름은 아키야마 요시히로 이다.

일본의 국가 대표 유도 선수로서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2004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에서 종합격투가로 데뷔하여 2006년에는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토너먼트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2006년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의 경기에 몸에 로션을 바르고 부정한 승리를 했다는 이유로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당했다.  



생애

추성훈은 재일한국인 4세로 일본 오사카 시에서 태어나 유도 선수인 아버지 추계이의 영향으로 세 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대한민국 유도 국가 대표로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1998년 한국에 건너와 부산시청에서 운동을 했으나, 2001년 9월 다시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그 후, 헤이세이 관재국에 들어가 81kg급의 유도 선수로 활동했다.

2002년 유도 선수로서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안동진을 꺾고 우승했고, 2004년 7월 종합격투기 선수로의 전향을 발표하며 같은 해 12월 31일 첫 종합격투 경기를 가졌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승리로 종합격투가로서의 인지도를 얻다가, 2006년 10월 9일 멜빈 만호프와의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승리해 라이트헤비급 왕좌에 올랐다.

2006년 12월 31일 K-1 2006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대전해 TKO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반칙 행위가 발각되어 경기는 무효 경기가 되었다. K-1의 주최사인 FEG는 그에게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2007년 10월 28일, 무기한 출장 정치 처분에서 풀린 후, K-1 서울 대회에서 추성훈은 데니스 강과 메인 이벤트에서 맞붙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추성훈은 데니스 강에게 1라운드 4분 45초만에 오른손 어퍼컷으로 KO승을 이끌어냈다.



부정 의혹

2006년 12월 31일, 추성훈은 K-1 프리미엄 2006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대전했다. 사쿠라바는 추성훈의 몸이 미끄러워 잡을 수가 없다며 심판에게 어필했지만 경기를 계속 진행했고, 추성훈은 사쿠라바의 가드 사이로 계속 주먹을 날리며 레프리 스톱에 의한 TKO승을 이끌어냈다. 사쿠라바는 경기 후에도 계속 항의했지만 심판은 추성훈의 부정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추성훈 역시 사쿠라바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당시 다니카와 사다하루 프로듀서는 “경기에 대해 게임을 멈추는 것은 심판과 마에다 SV의 판단이고, 아키야마(추성훈)의 몸에서 기름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급소를 가격하거나 눈을 찌른다면 모를까 사쿠라바의 주장만으로는 경기를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사쿠라바가 저렇게 화난 것은 처음 본다”라고 언급했다. 추성훈은 2007년 1월 1일 기자회견에서 몸이 미끄러웠던 이유를 다한증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판이 부정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경기 장면을 보면 종료 후 심판은 사쿠라바의 몸이 미끄럽다는 항의에 추성훈의 몸을 직접 손으로 확인 후 이상이 없다는 표시로 추성훈에게 고개를 아래 위로 끄덕여 이상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추성훈도 이에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2007년 1월 11일, 대전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추성훈은 경기에 앞서 전신에 스킨 크림을 발랐음을 밝혔다. 그 크림은 바셀린이나 글리세린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추성훈의 건조한 피부 때문에 평소에 사용했던 것이었다. 추성훈은 바셀린이나 오일이 아니면 괜찮은 줄 알았으며, 주최사인 FEG는 TV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크림을 칠한 것으로 보아 추성훈 측에 악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히어로즈의 규정에는 경기 전에 몸에 무언가 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경기는 무효 처리가 되었고 추성훈의 파이트 머니는 전액 몰수되었다. 그 후 1월 17일 추성훈은 FEG에 주최하는 대회에 무기한 출장 정지라는 이례적인 처분을 받았다. 이는 거의 추방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졌고, 한때 프라이드로의 이적설까지 돌게 되었다.

이 논란의 과정에서 일본의 여론은 추성훈에 큰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를 보냈고, 그에 맞춰 히어로즈의 스폰서가 떠나고 대회를 중계하는 TBS 방송국에까지 비난의 화살이 날아왔다. 또한 일본의 한 모델과의 연애까지 비난하며 글러브 안에 쇠뭉치를 넣었다는 둥 인터넷에는 그를 욕하는 악성 댓글이 무수히 올라왔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추성훈에 대한 FEG의 처분이 “사쿠라바 카즈시가 일본의 종합격투기 영웅이었기 때문에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불만을 표시하는 여론이 일어났다.

한국인

추성훈은 재일 한국인 4세로, 아버지 추계이의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라는 당부에 따라 1998년 4월 그의 여동생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부산시청에 들어가 유도 선수로 활동했으나, 2001년 9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이 이유에 대해 교포에 대한 차별,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한국 유도계의 텃세와 파벌 싸움, 자신이 한국에서는 2인자로서 대표가 될 수 없었기 때문 등 여러 추측이 일어났으나, 본인은 일본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더 맞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2년 그는 일본 대표로서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여했고, 결승전에서 대한민국 대표인 안동진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에 스포츠조선은 ‘조국을 메쳤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는 등 한국의 여론은 추성훈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후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뒤, 그는 2005년 11월 5일에 열린 히어로즈 서울 대회에서 한국 출신 선수단의 대표로 나서게 되었다. 그는 오쿠다 마사카츠와의 대전에서 승리한 뒤, 링 위에서 “(국적은) 한국인이 아니지만, 제 가슴 안에, 여기 들어가 있는 피는 완전 한국인입니다” 라는 발언을 했다. 이어 11월 13일 KBS가 제작한 추성훈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고, 과거 추성훈이 한국에서 유도 선수로 활동했을 때 용인대학교와 대한유도회의 밀어주기식 편파 판정에 피해를 보았음을 밝혔다. 국가 대표 선발전 등의 중요한 대회가 있을 때마다 추성훈에 불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방송이 나간 뒤 한국에서는 추성훈에 대한 지지와 대한유도회와 용인대학교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일었다.  

그는 종합격투기 경기에 나설 때마다 도복의 양 어깨에 한국의 태극기와 일본의 일장기를 달고 등장하며,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양 국기를 손바닥으로 번갈아 내리치는 의식을 한다.

 

작년 마지막 날 종합격투기 '야렌노카' 대회가 열린 일본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 태극기와 일장기가 붙여진 유도복을 입은 선수가 등장하자 2만5000여 명의 일본 관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라" 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왔고 7년 전 일본으로 귀화한 '아키야마 요시히로' 였지만 일본인은 그를 '반쪽 일본인' 추성훈으로 몰아쳤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일본 국적을 가지게 된 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그에게 일본실업팀의 고액 스카우트 제의가 잇따랐지만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부산시청 유도팀에 입단했다. "제일교포로 한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일본 대표 선발전에는 못 나갔습니다. 국가대표가 돼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한국에 왔던 겁니다." 그런 그에게 심심치 않게 '애국(愛國)'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추성훈은 2년7개월 만에 '태극마크' 도전을 거두고 2001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반쪽 한국인'이라고 불이익을 당한다"는 게 이유였다.

"실력이 아니고 판정 때문에 많이 졌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그랬죠. 평소 동료들이나 아는 분들은 저에게 잘 대해줬지만 대회 판정은 달랐습니다. 2001년 아시아선수권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나가 우승했지만 2진이 나간 대회였습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도 (국내 대회 판정은) 차이가 없었죠."

 

그리고 1년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나타났다. 유도 인생의 국가대표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인으로 귀화했던 것. 그가 81kg급 결승에서 한국 선수를 이기고 금메달을 땄을 때 한국 여론은 그를 '추성훈'이 아닌 '아키야마'로 내몰았다.

"그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건 아닌데…. '저는 원래 한국 사람이니까 국적에 관계없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는데…."

함께 인터뷰에 응한 어머니 유은화(54)씨가 말을 이었다. "부산 사람들은 사정을 어느 정도 아니까 응원해주는 사람도 꽤 됐어요. 하지만 한 스포츠신문에서 '조국을 메쳤다'고 나오니까 가슴이 아팠죠. 성훈이는 일본 국적을 가졌지만 한국 사람이니까 응원해줄 걸로 알았는데 (언론이) 그렇게 나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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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 http://ko.wikipedia.org

출처 2 : 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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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K-1 이라는 종목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기에, 추성훈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많이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언론에 주목을 받기에 누군가 한번 들여다 보자는 식으로 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가, 훌륭한 유도선수 였는지, 혹은 이종격투기에서 굉장한 선수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단, 추성훈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아픔이라고 할까..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했던,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그의 삶의

단편을 통해서 그것을 느꼈다.


 "외로움" 이라는 것을 말이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항상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대상일테지만, 정작 그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진정한 조국이 아니였을까..


설령, 집에서 키우는 똥개라도, 해가 지면 돌아갈 집이란게 있다.

물론 감정은 있겠지만, 이성적사고는 할 수 없는 개 라는 동물도, 이렇게 집이라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돌아갈 장소라는게 있고 그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는데..


인간, 추성훈은 어떻겠는가.


돌아갈 수 있는 곳.


우리 삶에서 조국이라는 의미는 어쩌면 이런 의미가 아닐까..

돌아갈 수 있는 곳을 가졌다는 그 하나로도 우리는 정말 행복한게 아닐까.


추성훈.


그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껴본다.